[들어가며]동요하는 것은 네 마음 뿐이다.밖은 평온하고 천천히 움직인다.기계의 빠른 움직임은 또 다른 차원이다.우주는 본질적으로 평온하고 고요하다.우주의 변화는 느리게 느리게 진행된다.기계가 없다면 낮에도 고요를 알아챌 수 있다.도심 한 가운데서도 가능하다.기계를 빼면 삶의 순간은 고요하다.어지럽고 혼란스럽고 까탈스러운 것은 결국 인간이다.정확히는 인간의 내면이다. 정확히는 두뇌다.기계의 안쪽도 복잡다단하다.하지만 기계에는 마음이 없다.화, 분노, 충동에 잘 휘감겨 요동치는 것은 인간의 내면 뿐이다.자연은 그렇지 않다.기계도 그렇지
[들어가며]문학산 작은 봉우리 오르다 숨이 차 큰 나무 밑에 멈췄다.뜻대로 되지 않는 저간의 사정에 울화가 치밀어 맥이 빠르게 뛴다.치미는 화를 삭히라는 스승은 말은 경 속에 머물러 있다.그 사이 삭맥과 빈맥이 수명 단축을 부른다.세포의 흥분으로 증가된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는 최초 2분 정점을 찍고 15분 이내 떨어진다.떨어지길 기다렸다가 명치에 담긴 화기(火氣)를 산 아래로 꺼낸다.고수레~고수레~울화를 던져 버린다.저간의 사정들도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다.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 난 일, 일어 나고 있는 일, 머리 속 영상이 멈춰야
[들어가며]겨우내 오가던 작은 숲길이 녹았습니다.포용과 치유의 시간이 찾아오나 봅니다.푹신한 진창에 신발 밑창은 엉망진창 됐지만,마음과 정신은 그 어느때보다 간결합니다.영구 동토 앞에서도 계속 전진하길 기원합니다. [동토의 숨골]간밤에 아무도 모르게 비가 내렸나소리없는 서리꽃에 오솔길 젖었다내내 얼어붙은 동토가오늘따라 반드럽더니다시 돌아온 계절은얼굴 바람까지 쉬이 내준다녹은 땅은 물렁물렁진창에 신발은 개똥밭을 뒹굴었나할머니 행복한 꾸지람 들려온다봄 여름 가을 겨울다시 돌아 봄이 오면사르르 녹은 땅에 네 지병도 녹는다한기가 끊기고 약
[들어가며]"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허먼 멜빌의 소설 'MOBY DICK' 中 에이헵 선장의 독백이다.작살로 모비딕을 찍어 잡으려 한 에이헵 선장은 결국 모비딕의 역공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고 바다의 제물이 됐다. [모비딕, 자본군단의 질주]모진 각자의 방에서 더듬이 없이 불우한 우리는방 밖의 냉랭한 대기와대기보다 매몰찬그들의 야간작업을절대 감지할 수 없
[들어가며]가난은 절망이다.몸부림쳐봤지만 범법 아니고는 벗어날 수 없다. 물질적 가난에 억눌린 사람에게 마음의 풍요와 연대를 논하기는 쉽다.찰나의 정신승리도 가능하다.그러나 이내 '의식주의 비참함'으로 복귀한다.좁은 집에선 곰팡이가 피어 오르고, 빨랫감은 쿰쿰하고 비릿하다.음식은 조미가공식품(調味加工食品)으로 체내염증을 축적한다.고리대 장기채무, 상속할 유산의 부재는 주둥이를 다물게 한다.그런데도 정치인과 자본가는 100년을 기다려도 당신에게 손을 뻗치지 않는다.기대조차 하지마라. 그런 적 없다.가난은 고스란히 짊어지는 나락행이다.
[들어가며]믿음은 변함없다.사고하는 인간 동물에게 생(生)의 본질은 독존(獨存)과 배고픔이다.나머지는 피상과 현상이다.육신과 정신이 본질에 가까워질 때, 그때 시가 피어 오른다.때는 자주 오지 않는다.부른다고 오지 않는다.365일 일상은 고통을 회피하는 쪽으로 돌아간다.허기는 이내 채우고 독존은 상존(相存)이 된다.그게 일상이다.암(雌)은 수(雄)로, 수는 암으로 기어이 채워져 빈곳을 빈대로 놔두질 않는다.본질에 이를 시간이 없다.그래서 절대 본질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은 고통스럽다.시인은 본질에 이르는 직(職)이다. [1996년
[들어가며]오래된 편지가 있다. 전자 메일은 사라지지 않았다.그곳에는 객사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배신은 아니라는 절대 믿음도 있다.시인은 오래 떠돌았다. 병에 걸렸지만 객사하진 않았다.하지만 배반했다.시인이 살던 인천 계산동엔 슬픔이 있다.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당시 슬픔은 분노가 됐고 분노는 시인을 거리에 세웠다.시인은 거리에서 내려 온 뒤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그런데 동지들은 여전히 그 거리에 살고 있다.지금도 살고 있다. [2005-2022 Regret 등지고 떠난 자] 다 떨어져돌아보니회한만 남았다잠행도 아니었고복무도
[들어가며]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들면 시인은 오래전 스승과의 만남을 떠올린다.그는 우리 존재 자체가 길가에 핀 한 포기 풀과 같다고 일러줬다.길가에 풀, 들판의 꽃은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없다.잘난 체, 못난 체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주어진 여건대로 존재한다.늘 존재 자체로 당당하다.삶이, 생명이 원래부터 특별하지 않았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의미 부여와 해석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들풀처럼 마음을 내보면 어떨까. [동행]삶이 축복일 수 있음을가르쳐 준 이 있으니삶이
[들어가며]시인은 젊은 시절 욕망이 삶을 망치는 줄 알았다.사람들도 악화(惡化)가 있으면 그저 욕망을 욕했다.지나고 보니 욕망이 삶을 망치지는 않았다. 부작용은 있다.하지만 욕망에는 삶을 치고 나가는 열의와 순작용이 있었다.그러고 보니 삶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은 분노였다.분노의 발현은 되돌릴 수 없었다.대적(對敵), 분노, 치미는 화는 자신과 주변에 모든 것을 해쳤다.또 대적, 분노, 복받치는 화가 돼 다시 돌아왔다. 욕망과 분노가 가라앉은 그곳에 시인은 가끔 들러 안부를 묻는다."잘 지내시죠" [발화 후]감정의 지나친 세뇌였을까
[들어가며]집을 나와 직장으로 향하면 잿빛 도시가 아우라를 친다.직장을 나와 집으로 향할 땐 금지된 땅에서 썩은 두엄 냄새가 밀려온다.그 사이를 호젓한 수풀이 오솔길을 내주며 쉬어가라 한다.침묵의 숲을 매일 오가며 시인은 자주 모든 것을 멈추고 싶다.멈춰야 할 것은 시인이지 세상은 아니다.해 떨어져 땅거미 오기 전 들녘을 쫓고 쫓던 시절에는순환과 정화로 에너지를 가득 만들어냈다.숲의 쉼표는 옳았다. [1978, 사념 길]여길 떠나세속으로 들어가아찔할 만한타락의 향내가네 정신 교란할 때출혈하는 여인야밤의 겁탈 환상육신으로 스며들 때목
[들어가며]그 시절 성역(聖域)이었던 서구 자본주의 이론서와 철학서적은 세상을 이데올로기로 양분했다.지금도 100년 전 냉전을 주도했던 인간들이 新냉전을 거들먹거리며 전 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성숙하지 못한 의식과 과잉 행동에, 편향된 이념이 더해져 왜곡과 편견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눈덩이처럼 커졌다.너무 커져 적(敵)에 대한 증오는 으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전(實戰)이 됐다.들여다 보면 지독한 인간애(人間愛)의 결핍이다. 미치광이다.'내 손 안의 금융비서'를 두고 주식과 코인, 부동산에 모두가 집중하는 완벽한 물신(物神
[들어가며]평생의 하루하루를 이루는 일상은 연속성과 전문성의 습(習)이다. 습(習)은 그나마 우리를 버티게 하는 위안이다.동시에 습은 생업(生業)을 이룬다.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삶의 시간은 수 억 가지 복잡한 작용 속에서 습을 위협한다.내적 분노와 악연이, 또 극단적 선택들이, 병마가 루틴(Routine)을 뒤흔든다.역병과 전쟁, 경제불황은 밖에서부터 우리의 본업을 위협한다.이런 세상에서 불합리와 극단주의가 득세한다. 박애(博愛)가 사라진다.습이 무너지고 안위(安慰)도 잃는다. 곧 일감도 빼앗긴다.그래서 시인은 침도 삼킬 수 없었
[들어가며]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매일 바뀌어 가는 인천 학익동의 풍광은 시인에게 매일 낯설다.그 낯섦이 누군가에는 '쩐'이 되고 누군가에는 둥지 내몰림, '약탈'이 된다.시인에게는 학익동의 오래된 담벼락도, 새로 들어설 철제 휀스도 삶의 희망 보다는 슬픔만 내재 한듯 보인다.집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듯한 집 한 채, 원가에 주어지기를 소망한다. [학동 담벼락] 감나무 수세미 영근10월의 학동 담벼락엔검은 세월 켜켜이 뒤집어쓴 단절이 배어 있다외줄 철근으로 쌓아 올린 시멘트 담장은모진 풍파에 시달려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새로 쌓은 붉은